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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DT전설 고 한주호 준위

나에게는 잊지 못할 아주 위대한 교관이었다.

 

5공수 특전여단에서 근무를 하던 당시, 해상 대테러팀에서 활동하고 싶어서 택한 길은, 특수전 사령부에서 실시하는 7주의 해상척후조 교육보다는 제대로 된 교육을 받고 싶다는 생각에서 24주의 UDT 교육을 택했다.

당시 장기 복무가 아닌 지라, 부대에서도 보낼까 말까 했었다. 장기복무자에게 우선적으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혜택이 있었다. 아마 지금도 있을 것이다.

UDT교육을 수료하고 장기 복무를 하겠다고 대대장과 약속을 하고 1992년 5월 진해 UDT 본부로 내려 갔다.

그 당시 나는 중위 고참으로 중대장을 하고 있던 중이었고, 고 한주호 준위(한주호 교관)는 상사의 계급장을 가지고 교관을 하고 있었다.

1992년 UDT 38차 1번. 이것이 계급을 떼고 교육을 받아야 했던, 그때 당시의 번호였다.

가입교 기간 중에 수영을 테스트 하는 과정에서 처음 한주호 교관을 만났다.

한주호 교관 왈 "올해는 잘하면 1번 생도가 수료를 할 수도 있겠는데" 이게 나에게 던진 첫 말이었다.

UDT 소속 장교에게 물었다. 한주호 교관의 말이 무슨 뜻이냐고.

UDT는 매년 1차수가 배출이 된다. 1984년 30차에 1번 생도가 수료하고, 내가 교육을 받던 전 기수 37차까지 그동안 1번 생도가 수료를 하지 못했다고 한다.

군 생활을 해본 분들은 교육을 받을 때, 1번의 의미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암튼 1번 생도로서 무척 힘이 들었던 것 같다.

 

1990년 YMCA 수상인명구조원 자격을 받았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암튼 수영이나 각종 부분에서 앞서나갔던 것은 사실이다. 이렇게 앞서 나가면서 한주호 교관과의 만남은 자주 이루어지게 되었다.

 

UDT교육의 초반기에는 맨몸 수영 2마일(3.7킬로미터), 핀수영4마일(7.4킬로미터)을 측정을 통해 이루어지게 된다. 처음 150여명을 교육생 중에 수영 3등, 핀수영 3등으로 들어왔었다.

솔직히 일찍이라는 표현이 적절한지는 모르겠다.

내가 핀수영 4마일의 기록이 2시간 10분, 마지막으로 들어온 핀수영자의 기록은 8시간이다.

 

이렇게 일찍 들어온 나에게 한주호 교관은 다른 임무를 부여했었다. 

"1번 생도는 해군이 아닌 특전사 소속이니까, 이 교육을 수료하면 아마도 부대에서 수중에 관한 총 책임자가 되어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일이 많을 것이다. 그러니 전체를 통제하는 것도 배우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런 이유로 한주호 교관과의 만남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게 되었다.

 

이런 훈련을 하게 되면, 이런 것에 중점을 두어야 하고, 이런 불안전한 사항이 있으니 이렇게 하라면서, 이렇게 이렇게

 

이러면서 한주호 교관과의 친분은 좋아지게 되었고, 항상 전화 통화를 하면 "유능한 38차 1번 생도"라고 반겨 주던 한주호 교관.

 

전역을 하고 난 후, 다시 스쿠버 다이빙에 관련된 내가 좋아서 하는 일. 그동안 3권의 스쿠버 다이빙에 관련된 교재를 출판하여, 한주호 교관에게 보내면, 항상 "38차 1번 생도는 다르다"고 칭찬을 해주던 한주호 교관.

현재 스쿠버 다이빙에 관련된 내가 있는 이 위치보다, 나를 교육시킨 교관에게 칭찬을 받았을때 기분을 너무나 좋았었다.

 

어제 뉴스에서 사망한 한준위라고 했을 때, 내가 아는 한주호 준위는 아닐 것이라고 생각을 했었는데, 그게 현실이 되어 버렸다. 오호 통재라. 나이도 적지 않는데, 한주호 교관의 사명감이라는게 뭔지.

 

내가 교육을 받을 때도, 상사이면서도 중사보다도 더 체력이 우수하고, 이론도 능숙하고 모든 것이 아랫사람들에게 부러움을 받았던 한주호 교관.......

 

아마도 당연히 좋을 곳으로 가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동안의 가르침. 명심하고 살아가겠습니다.